6월14일 주일설교: 병을 짊어지셨도다
본문: 마태8:14-17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여전히 온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흉흉하고 두려운 소식만 들려옵니다. 한 임신부가 메르스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시집 간 딸을 둔 부모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성남에서는 어떤 초등생이 메르스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초등생 자식이나 손자를 둔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뉴스를 들어도 메르스, 친구를 만나도 메르스,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도 메르스, 교회 와서 설교를 들어도 메르스, 2015년 6월 대한민국은 메르스의 재앙과 공포 앞에 모든 것이 멈춘 듯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 엄청난 재앙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두려워하고 떨면서 지낼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담대히 외쳤던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에게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에, 모두가 원망할 때에, 모두가 도망칠 때에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요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외치며 재앙과 맞섰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메르스와 비슷한 질병이 나오고 이 병에 걸린 환자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과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또 그 사건이 지금 큰 재앙과 어려움을 만난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위로를 던져주고 있을까요?
1. 열병
14절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보니 그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앓아누웠습니다. 대체 본문에 나오는 이 열병이란 무엇인가?
의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 열병은 Fever of Unknown, FOU라 불리는데 보통 열이 38.5도 이상, 3주 이상 지속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니 위생 상태나 의학적 수준이 지금보다 훨씬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치료를 잘 받으면 거의 치료가 됩니다.
저는 처음에 언론에서 하도 메르스 메르스 하기에 한 번 걸리면 다 죽는 치명적인 전염병인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치료를 잘 받으면 깨끗이 낫는 병이었습니다. 평택에서 메르스에 걸렸다 완치된 70이 넘은 한 할머니의 인터뷰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몹쓸 질병이 걸렸나... 그러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죠. 이 할머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이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직접 보지 못했고, 화면을 통해서 봤지만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고령의 할머니는 완치되어 퇴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열병은 치료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이스라엘이니 낙타가 주요 교통수단인 중동이 아닌가? 혹시 이것이 메르스의 원조?
학자들은 베드로의 장모가 아마도 장티푸스나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38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장티푸스나 말라리아는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우리 시대에서도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자, 우리는 누구나 열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장 신임하고 가장 아끼는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가장 앞장서서 따랐습니다. 그는 평소에 호언장담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혹시 예수님을 다 버릴지라도 저는 예수님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믿음이 충만한 듬직한 제자가 아닙니까?
이렇게 예수님이 가장 신임하는 제자요 다른 사람은 다 버려도 자신만은 결코 버리지 않겠다며 호언장담하는 믿음의 사람 베드로의 가족도 열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불평할 수 있습니다. 야, 예수님이 가장 신임하는 최측근의 가족도 전염병에 걸리네? 하나님이 지켜주고 보호해준다며 큰소리치더니 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렇게 교회에 달 다니는 우리도 베드로의 장모처럼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2. 열병이 아닌 베드로의 장모
중요한 것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내가 전염병에 걸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병이라는 재앙과 환난을 당했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어쩌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말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지금 제 집에는 제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있습니다. 혹시 병이 옮길 수도 있으니 다음에 오시지요.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 아닙니까? 물론 베드로는 좋은 의도로 이렇게 말했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결국 병을 회피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의사 하나가 우리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병원의 한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앞으로 우리 병원에서는 메르스에 걸린 환자는 받지 말아야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분노했습니다. 왜 열 받았습니까? 의사가 의사로서 자기의 사명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병과 맞서 싸우는 것이 의사가 할 일이지 병이 무섭다고 도망치는 것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세월호 선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장이라면 배가 침몰할 때 먼저 승객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가장 늦게 배에서 내려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에게 안심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고는 선장의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차림으로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렸습니다. 법원은 선장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닙니까?
그러나 본문에서 예수님은 병마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말라리아 병균에 감염되어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을 베드로의 장모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여기서 봤다는 말은 성경원어로 ‘에이도’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냥 소 닭 보듯 봤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열병 그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 병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살폈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우리 주님의 관심은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아니면 지금의 메르스 같은 병균이 아니라 그 병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병균이 아니라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한 영혼을 사랑하시고 그 영혼을 바라보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메르스라는 병균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메르스가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감염시키는지 모두 그것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물론 과학자와 의사는 메르스라는 이 아주 작은 괴물을 잘 관찰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분들의 의무이며 사명입니다. 메르스가 어떻게 생긴 놈인지 잘 파악해서 다시는 그런 놈들이 활개를 펴지 못하도록 박멸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맨 처음부터 이런 대처를 잘 했더라면 지금의 이 재앙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의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다 메르스라는 괴물만을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이 괴물만을 바라보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열병 그 자체가 아닌 그 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를 주의 깊게 살펴보셨듯이 메르스라는 병에 걸린 이웃들 또는 메르스만을 바라보며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우리의 이웃들을 봐야할 것입니다.
이번 메르스 재앙을 통해 뼈에 깊이 사무치게 된 진실 하나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내 옆 사람이 감염되면 나도 감염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옆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건강합니다. 위생관리도 잘하고, 영양이 높은 음식도 잘 먹습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면역력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도 단 한 사람이 감염되면 즉시 주위 사람이 감염되고 나도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병이 아니라 그 열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베드로의 장모를 주의 깊게 보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메르스라는 병균이 아니라 그 병으로 고통당하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이웃을 봐야겠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또한 재앙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습니다.
3. 열병과 맞서 싸우다
계속해서 본문 15절을 봅니다. 예수님은 38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던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인을 괴롭히던 열이 내려가고 만 것입니다. 결국 열병은 떠났고, 베드로의 장모는 치유함을 얻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열병에 걸린 여인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이 감염자의 손을 잡아주셨고 치료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질병과 맞서 싸운 것입니다. 재앙 앞에서 회피한 것이 아니라 가장 앞에서 재앙과 맞섰고 결국 병마를 물리쳤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니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들, 여러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주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만이 아니라 그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질병에서, 정신적인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연약하고 병들어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메르스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람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들아 다 내게로 어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병원에 가도 낫지 않는 병 때문에 슬프고 힘든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자, 메르스 재앙은 지나갑니다. 메르스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괴물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힘을 잃고 물러가고 말 것입니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의사들과 병원들을 허락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질병과 재앙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도망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재앙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그의 선한 도구입니다. 마치 소방관들이 화마와 사투를 벌이듯이 이 분들이 지금 병마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칸이라는 이름의 한 아프리카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나라에 처음 보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죽어갑니다. 당연히 치료제는 없습니다. 이 의사는 용감하게 환자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피와 침을 채취합니다. 당연히 감염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사는 용감하게 전염병과 맞섰습니다.
그러나 이 의사는 결국 감염되었고 연구를 마치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결국 의사들은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이 에볼라 바이러스였고, 항생제를 개발해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희생은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용감한 희생은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메르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분들을 응원해야할 것입니다. 그분들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사용하시는 도구들입니다. 그분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기에 이 재앙은 물러갈 것입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